AV 남배우 칼럼 98화. 알아도 도움이 안되는 AV 남자배우의 역사

 






Weekly Playboy 2017-12







부카게, 즙배우


지금은 자주 듣는 업계용어지만, 둘 다 av초창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말입니다. 이번 칼럼에선 이런 용어의 기원에 대해 써보고자 합니다. av장르 중에 정액물이라는게 있습니다. 정액사용에 특화된 매니아용 장르죠. 정액을 뿌린다, 정액을 먹인다, 정액을 입에 넣었다뺐다.. 등 여러가지 정액물이 있습니다만, 붓카게는 이런 정액물에서 파생된 새로운 개념입니다. 당시 정액물 업계에서 두각을 드러냈던 모 감독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고참AV감독들에게 이기기 위해 떠올린 비책이 부카게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한발의 정자만 찍는다면, 난 숫자로 승부하겠다!!"


수많은 남자배우들이 여배우의 얼굴에 대량으로 정액을 뿌려 더럽히는 촬영법이 고안됐습니다. 23년전 이야기입니다. 당시 av남자배우의 숫자는 최대 30명이었기 때문에 한 촬영장에 많은 남자배우를 데려오는건 힘들었습니다. 당시 남자배우의 급료는 일률적으로 5만엔. 예를 들어 20발을 끼얹으려면 그것만으로도 100만엔의 코스트. 총알 채우기가 쉽지 않습니다. 돈이 너무 많이 듭니다. 이런 두가지의 벽이 부카게의 앞을 가로막았죠.






하지만 그 신인감독은 머리가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기존 AV남배우를 사용하기 때문에 코스트에 무리가 생긴다. 그렇다면 발상을 전환하자. 그렇게 첫 부카게 촬영에 도전했습니다. AV남배우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발상의 역전이었습니다. 감독은 벤리야(便利屋,심부름센터) 찌라시에 적힌 번호로 전화했습니다. "얼굴 안 나오도록 찍을테니, 여자 얼굴에 정액 뿌려주지 않겠습니까?" 전화기에 대고 그렇게 교섭했습니다. 심부름 센터에 안면사정을 의뢰한거죠. 역시 벤리야는 너무 편리합니다(웃음). 심부름센터의 1인당 일당은 2만6천엔. 총20명. 코스트가 단숨에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세계최초의 부카게 촬영은 av남배우가 아닌 동네 심부름센터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심부름 센터를 통해 몇번 촬영을 했더니, 센터를 통해 왔던 사람들 중에서, "이제부터는 센터를 통하지 않고 직접 연락해줬으면 좋겠다" 라는 사람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회사에 수수료 뜯기는게 싫었던 모양. 감독이 심부름 센터에 지불했던게 1인당 2만6천엔(지금 즙배우 급료의 약4배). 거기서 회사에 줘야되는 중개수수료를 제외하고 직접 손에 남는건... 이후 심부름센터를 통하지 않고, 감독과 직거래. 직접 현장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게 즙배우 탄생의 순간입니다. 그 중의 한사람이 니와씨. 훗날 그는 즙배우를 총괄하는 모집꾼 "즙부모(시루오야)"가 됩니다.





시대는 VHS에서 DVD로 이행. 촬영시간이 길어지면서, 여백을 채우는 페라신이 탄생했습니다. 이런 곳에 "부카게 이상, 섹스미만"의 스킬을 가진 남배우가 기용되었고, 그들은 "페라남배우"라고 불리게 됩니다. 그 외에도 할배배우, 키모멘배우, 남자시오후키배우 등이 발생합니다. 모두 시대의 요구에 따라 탄생한 신종배우들입니다. 어땠습니까? 결코 도움 안되는 남자배우 역사강좌였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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