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있다는 것
볼일이 있어 방문한 사이타마에서 단풍으로 물든 공원을 산책했습니다. 원래 저는 산책하는 습관이 없어, 산책하는 경우는 목적지거나, 걷는게 목적이거나, 촬영 3택이었습니다. 이번에 산책한 것은 시간이 남았다는 이유에 불과했고, 저도 놀랄 정도로 느긋하게 공원을 걸었습니다. 예전에 이 공원 근처에 온 적이 있는데, 그때는 그냥 지나쳤죠. 머릿속에 한시라도 빨리 목적지에 도착해야한다는 생각 밖에 없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시간이 있다"라는 감각은 철든 이후 거의 처음인 것 같습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지지만, 어릴적에는 배움, 어른이 되면 일로, 항상 틈틈이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생활했습니다. 그렇기에 항상 시간이 없다고 느꼈습니다. 밤에 잠들지 못하는건 그날에 미련이 있는거라고 들었습니다. 저의 경우 밤마다 매일 하지못한 일들이 생각났죠.
어릴적의 나에게
지금 생각해보면 제 인생에서 터닝포인트가 있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최초의 터닝포인트는 귀였습니다. 어릴적 아빠, 엄마가 여러번 제 이름을 불렀지만,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처음 몇번은 노는데 푹빠져 있어 들리지 않았는데, 제 이름을 부른다는 사실을 눈치챘음에도 "중요한 일도 아닌데 부른다"고 생각해, 무시했습니다. 이름을 불렀는데도 자식이 대답하지 않는다는 것에 위화감을 느낀 부모님은, 수차례 거듭 제 이름을 부르며 확인했습니다. 이런 저의 습관은 악순환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결국 병원에 끌려가 진찰까지 받았습니다. 당시 어휘력이 부족해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다 들리는데라고 생각했던게 기억납니다. 그 후 어머니는 청력 훈련을 위해 저에게 피아노를 배우게 하셨습니다. 물론 저의 귀는 문제없어서 피아노를 잘 배웠습니다.
다음 터닝포인트는 초등학교 4학년때. a라는 친구가 생겼습니다. a는 완벽주의자에 딱부러지는 성격. 어째선지 주체성 없는 저와 친해졌습니다. 어느날 둘이서 아이스크림 가게에 갔습니다. 뭘 먹을지 고르지 못하는 제가 a와 같은 걸 먹겠다고 하자, a는 "자신이 먹고 싶은걸 모르면 안돼!"라고 말했습니다. 이후 a는 항상 뭔가를 고를때마다 제가 고르는 것을 기다려줬습니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스스로 생각하는 습관은 이때 생겼습니다. 다음은 av출연입니다. 이건 더 설명할 필요도 없죠. 얌전한 시골녀의 인생이 180도 바뀌었습니다. 다음 터닝포인트는 재취업에 성공했을때일까요? 출산, 병, 아니면 새로운 만남? 음 일단은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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