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족 회고담 7화. 장미족 절도로 투신자살한 소년

 











이토 분가쿠





과거 6회에 걸쳐 일본 게이잡지의 융성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오늘은 특별히 시간을 되감아, 장미족 편집장으로서 이토씨가 체험한 몇개의 중요한 사건에 포커스를 맞춰보고자한다. 장미족을 간행하던 시절, 가장 잊을 수 없는 사건은 무엇인가? 이토씨에게 묻자 그는 바로 이렇게 대답했다. "서점에서 장미족 절도로 붙잡힌 소년이 투신자살한 사건입니다"




때는 1983년. 당시 미야자키현 미야자키시에 있었던 7층짜리 백화점의 3층서점에서 고등학생 소년이 만비키(절도)를 하다 점원에게 붙잡혔다. 이름과 주소를 묻자, 소년은 얌전히 대답하고 사죄했다. 전화로 부모에게 데려가라고 연락했다. 사건은 그후에 벌어졌다. 소년은 경비원에게 "화장실 보내주세요"라고 말하고, 자리를 뜬후 그대로 빌딩옥상에서 투신자살했다. 그가 서점에서 몰래 훔치려했던 상품은 바로 장미족. "신문에는 부모가 엄하게 야단친게 원인이라고 적혀있었지만 아니다. 자신이 게이인걸 부모에게 들켰기 때문에 자살했다" 물론 그가 말없이 죽음을 택한이상, 진상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전후사정을 고려해보면 예상치 못한 커밍아웃이 그를 자살로 몰아넣었을 가능성이 높다.





참고로 신문은 소년이 훔치려했던 상품이 장미족이란걸 공표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토씨는 이를 알고 있을까? "서점의 아르바이트 점원이 저에게 편지로 알려줬습니다. 그 점원도 장미족 독자이자, 게이였죠" 편지를 쓴 점원은 소년을 체포한 점원과는 다른 인물. 당일은 비번이었다. 동료로부터 사건내용을 듣고 장미족에 편지를 보낸 것. 이토는 연재칼럼에 "세간의 무지(無知)가 무섭다"라는 타이틀과 함께 이 편지를 게재했다. 그 일부를 소개하겠다.




"17세입니다. 처음이지 않았을까요? 읽고 싶지만, 부끄러워서. 어째서 그날 제가 비번이었을까요!! 이 마음만으로도 가슴이 아픕니다. 저라면 소년의 마음을 알아줬을텐데. 너만 그런게 아니야. 나도 그래! 라고 말해줬을텐데…(중략) 저라면 전화로 경비원을 부르기 전에 적어도 훔친 책을 다른것으로 바꿔줬을텐데. 경비원이 장미족을 가리키며, 네가 훔치려한 책은 이거지!라고 말했을때 소년의 심정은 어땠을까? 상상만해도 제가 부끄러워 죽을것 같습니다"(장미족 1983년 8월호)




이 편지를 쓴 점원은 도시와 지방은 게이물이 놓이는 상황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점원에 따르면 그 서점은 미야자키시에서도 호모잡지가 가장 많은 곳. 그래서 게이 고객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이 중년 남성이고, 고등학생이 게이잡지를 구입하는건 드물다고 한다. 신주쿠 2쵸메라는 곳이 있는 도쿄와 달리, 지방은 동성애자가 안심하고 구매할수 있는 장소가 적다. 지방서점에서 게이잡지를 구매하는건 17세 소년에겐 상당히 부담되는 행위라고.






이토는 이 사건을 장미족에서 대대적으로 특집. 편집부에 많은 편지가 쇄도했다. 소년을 추도하는 목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나도 구입할 용기가 없어 장미족을 훔친적이 있다"라는 공감의 목소리도. "이 일로 제가 무력하다는걸 통감했습니다. 이렇게 슬픈 사건이 또 있어선 안된다라고 생각했고, 세상의 편견을 없애겠다고 다시 한번 결심했죠". 그렇다면 이건 옛날 일본에 한정된 이야기일까? 2015년 4월, 히토츠바시 대학에 다니던 게이남성이 투신자살했다. 자살의 원인은 연애감정을 고백한 상대의 아웃팅. 미야자키현 백화점 옥상에서 소년이 투신자살한지 30년이 흘렀다. 책은 인터넷으로 구입할 수 있는 시대가 됐지만, 비극적인 사건은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걸까. 그 이유를 한번쯤 생각해보는 것에서 무지로부터의 탈각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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