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왕을 읽고 불교에 입문한 스님이 말하는 일본의 불교만화.
먼저, 불교 만화를 4종류로 분류해보자.
만화 작품이란 것은 상업체계 속에서 생산되어, 우리들 독자에게 건네진다. 공산국의 프로파간다를 목적으로 한 만화라면 이런식으로 생산되진 않겠지만, 자본주의 경제체계 일본의 경우, 거의 틀림없이 이 프로세스를 거친다. 즉, 돈을 지불해서라도 읽고자하는 사람의 존재 없이 만화작품은 성립되지 않는다. 이윤을 추구하는 출판사측이「이 작품은 독자가 붙을거야」라고 판단하지 않으면, 만화 작품이란건 거의 발매되지 않는다.
먼저, 불교 만화를 4종류로 분류해보자.
만화 작품이란 것은 상업체계 속에서 생산되어, 우리들 독자에게 건네진다. 공산국의 프로파간다를 목적으로 한 만화라면 이런식으로 생산되진 않겠지만, 자본주의 경제체계 일본의 경우, 거의 틀림없이 이 프로세스를 거친다. 즉, 돈을 지불해서라도 읽고자하는 사람의 존재 없이 만화작품은 성립되지 않는다. 이윤을 추구하는 출판사측이「이 작품은 독자가 붙을거야」라고 판단하지 않으면, 만화 작품이란건 거의 발매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불교만화에 독자층이 있을것인가? 라고 생각해봤다. 일본은 문화적으로 불교가 뿌리깊게 박혀있는 나라이다. 게다가 최근의 불교 붐 (개인적인 견해로는 불교붐이 아니라, '불상 붐' 과 '사원 이벤트 붐' 혹은 '젊은 승려' 붐이라고 하는게 적절하겠지만…) 도 있어 불교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사람도 잠재적으로 많이 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여기서 한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불교만화의 독자가 불교가 가진 풍부한 컨텐츠 중에서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를 이해해야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불교만화의 가능성, 즉 새로운 방식으로 불교 컨텐츠를 이용해, 만화로서 성립시키는 경우도 있기에, 새로운 독자층을 개척해나간다는 의미에서, 이런 흐름도 의식해야할 필요가 있다.
그럼, "불교만화" 라는 말에, 여러분들은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가. 불교만화를 읽은 적이 없는 사람이라도, 조금만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 데즈카 오사무의『붓다』로 대표되는 "석가의 이야기" 를 떠올릴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좀 더 다양한 불교만화들이 만들어 지고 있으며, 우리들이 알고 있는 불교만화는 "스토리면" 에서 이하 4개로 분류할 수 있다.
(I) 석존・조사・명승의 전기 및 불교사
(II) 불교설화, 불교사상, 불교교리, 불교철학, 불교용어
(III)현대의 불교자 (및 그 환경) 의 실정과 생활
(IV)불교 관련 캐릭터를 모티프로 오리지널 스토리를 창작
눈치 빠른 독자라면 알겠지만, 분류 I・II・III 은 불교의 삼보(三宝)와 유의성이 있다. 삼보란 불법승(仏法僧)을 가리키는데,「불(仏)」은 불교를 연 석존(석가),「법(法)」은 석존의 설법이 된 가르침,「승(僧)」은 석존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승려의 집단을 가리킨다. 불교는 기본적으로 불교경전에 적혀진 것을 기본으로 삼이, 이를 근거로 실천으로 옮기는 것을 말한다.
분류 IV는, 그런 불교경전에 기록된 세계관 속에 있는 캐릭터 (불교설화의 등장인물 혹은 부처)에서 모티프를 얻어,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런 분류 IV의 속에는, 이이지마 코스케『스님 삼바!! (お坊サンバ!!)』와 같이, 불교 캐릭터의 외견과 명칭 같은 표면적인 부분만 사용하고, 캐릭터성이나 특징은 완전히 무시한 개그 작품들도 있어, 불교만화의 전개의 폭넓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지금은 스님으로서 이와 같이 불교만화를 분류해놓고, 이에 대해 논하고 있지만, 내가 불교만화에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은 것은 고등학교 3학년 겨울때였다. 그 때, 나는 히로시마의 진학교 국립이과클래스에 있었고, 대학은 국립대학 생물학과에 합격했다. 하지만 동시에 불교계 사립대학에도 합격해, 2가지 진로를 앞에 두고, 갈등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내가 만나게 된 것이, 오기노 마코토(荻野真)의 『공작왕 퇴마성전(孔雀王 退魔聖伝)』이었다.
이 만화는 밀교 세계관을 모티프로, 주인공이 공작명왕진언(孔雀明王真言)을 외면 손에서 화염이 나가서 적을 쓰러뜨린다는, 불교만화의 분류로 보면 분류IV에 속하는 내용이지만, 그 때까지 불교와 절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나에게, 불교에 대한 흥미를 심어준 작품이었다. 판타지 만화지만「이렇게나, 불교의 세계는 넓고, 매력적이구나」라고 감동받아,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에 결국 불교계 사립대학에 진학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와 같이, 내 인생은 결국 만화에 좌우된 것이다.
(여담이지만, 나는 대학재학중에, 전직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학예원인 주인공이 활약하는 스토리인 호소노 후지히코의『갤러리 페이크』란 작품을 만나고, 박물관학예원자격증을 취득. 카와사키시의 박물관에서 졸업까지 2년간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이후 나는, 불교를 모티프로 한 작품을 만나면 반드시 체크하게 되었다. 닥치는대로 읽어나가던 와중에 그림1과 같이 분류를 하게 되었는데, 생각해보면, 옛부터 정토계 사원에서는「에토키(絵説き)」라고 해서, 지옥그림, 내영도(来迎図), 열반도(涅槃図), 육도회도(六道絵図)등을 이용해서 포교했다는 역사도 있어, 분류II에 해당하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에 눈치챘다. 즉, 그림과 불교의 관계는 현대에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연대별 불교만화 분석
지금까지 내가 본 불교만화를 4종류로 분류해서 연대별로 나누어 그림 2, 3, 4로 나타내었다. 즉, 이는 각각의 분류가 시대에 따라서 어떤 비율을 지니고 존재했는지를 나타낸 것이다. 본고말미에 게재한, 내가 개인적으로 파악한 (그렇기에 불완전한)『불교만화 일람』을 참조하면서, 이야기를 진행시켜 보고자 한다.
먼저 그림 2를 보면, 1989년 스즈키 출판에서 발행하기 시작한 작품군『불교 코믹스』시리즈가 출판되었기에, 80년대까지 상당수의 불교만화가 만들어졌음을 알수 있다. 분류로 보면 1과 2가 작품을 이분하면서, 석가, 명승의 전기와 불교교리가 주를 이루면서, 독자들에게 전해져 온 흐름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그림 3을 보면, 분류2의 작품비율이 급격히 감소했다. 이는 1997년에 유명한 고승을 다룬 시리즈가, 역시 스즈키 출판에서 나오기 시작한 탓도 크지만, 겉으로는 분류 1의 체재를 취하면서도, 실은 분류II가 사실상의 주제인 작품들도 늘어나면서, 그림 1에서 보여준 것처럼 분류1과 분류2의 교집합에 해당하는 작품들이 많이 늘어난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현재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 그림 4의 상황이다. 2000년대 이전의 상황과는 확연한 변화가 일어났다. 먼저, 시리즈물이 만들어지지 않게 되었고, 스즈키 출판 시리즈처럼 극화출신의 작가가 아니라, 현재 주간・월간 만화잡지 출신의 작가들이 불교를 소재로 삼아 만화를 그리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와 동반해서 분류3과 분류4의 비율이 늘어났다.
먼저 분류4의 라인업을 살펴보면『응석부리지마』『공작왕 곡신기』『스님삼바』『세인트 영맨』『기괴한 이야기 하나사카 잇큐』등, 소년지・청년지를 중심으로 연재되고 있으며, 액션・개그・에로 등의 요소를 넣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딱딱한 이미지의 세계관과 인물상을 팝하고 가볍게 그려냄으로 갭을 발생시켜, 재밌는 작품으로 완성시키려는 시도가 행해지고 있다.
이는 불상을 피규어로 인지하는 감각과 비슷한 것으로, 예를 들면, 미륵보살 상을 엠마누엘 부인으로, 쿠야쇼닌상을 나팔에 비유하는 것과 비슷한 감각이다. 정도의 차는 있지만, 일단 불교의 "가르침" 같은 것은 뒷전에 두고, 캐릭터성만 뽑아와서, 만화 속에서 살아 움직이게 하는 이런 작품들은 분류4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80년대부터 이어지는 오기노 마코토의 『공작왕』시리즈와, 90년대 타케이 히로유키의『불존』이 바로 이런 만화의 대표작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세계 최초 불상액션만화.
샤먼킹 작가 타케이 히로유키의 데뷔작 '불존(仏ゾーン)'
샤먼킹 작가 타케이 히로유키의 데뷔작 '불존(仏ゾーン)'
현대 불교만화의 특징
다음으로 비율을 늘려가고 있는 분류3을 보면,『붓센(ぶっせん)』『빛의 바다(光の海)』『아스카의 수행일기(あすかの修行日記)』『스님 데이즈(坊主DAYS)』『독경해버릴꺼야(読経しちゃうぞ!)』『비구니 만화가의 반야심경체험(尼僧漫画家の般若心経体験)』『종교법인 주니어's(さんすくみ, 산스쿠미)』『절걸(寺ガール)』등, 현대승려, 특히 젊은 승려들의 고뇌를 코미컬한 터치로 그려낸 작품들이 눈에 띄인다. 그중에서도 특히 이질적인 것이 미즈사와 메구미(水沢めぐみ)의『절걸(寺ガール)』인데, 절에서 태어난 3명의 소녀가 절에서 생활해나가면서 겪는 갈등을 청소년기 특유의 연애감정을 함께 얽어 그려나가고 있다. 드라마투르기로서는 오소독스한 소녀만화이지만, 곳곳의 설정에서 다른 소녀만화와는 차별성을 두어, 절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이라면 무심코「아, 나도 그랬어!!」라고 말하게 만드는 소재들이 갖추어져 있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80년대 오카노 레이코(岡野玲子)가 『팬시 댄스』를 그린 것은, 매우 혁신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팬시 댄스(ファンシィダンス)』는 절의 후계자로서 촉망받는 대학생 주인공이 승려가 되는 일(속세를 떠난다)과 연애를 성취시키는 일(속세에 머문다) 사이에서 갈등을 품으면서, 인간으로서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인데, 작가는 20년 이상의 시대를 선견한셈이 되며, 작중에서 모델이 된 선(禅) 수행도장의 시대가 멈춘듯한 분위기와, 쉴새없이 빠르게 흐르는 도시 생활 스타일의 대비적인 묘사는 그야말로 훌륭하다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나를 포함, 모델이 된 영평사(永平寺)에서 수행하는 자들의 몇몇은 이 만화를 보고, 혹은 이를 원작으로 한 영화를 보고 수행에 임했을 것이다. 그리고 수행을 마친 다음에 다시 만화를 읽어보면서, 자신의 체험과 주인공의 행동을 겹쳐보며 노스탤지어에 잠길 것이다. 20년이 훌쩍 넘은 작품이라, 지금 읽으면, 당시 유행했던 생활 스타일은, 아무래도 촌스러움이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인간이 가진 갈등의 리얼함은 현대의 갈등과 조금도 변함이 없다. 2000년 이후의 불교만화가, 이렇게 "고뇌하는 불교자" 에 초점을 맞추어, 독자 자신이 일상생활에서 겪는 갈등과 링크시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장치로서 기능한다면, 이 역시 불교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불교서하니 생각나는데, 90년대까지의 분류1에 속하는 불교만화가 자주 사용하는 수법으로 "나레이터" 의 역할을 맡은 존재가, 스토리의 중간에 갑자기 불교특유의 개념을 설명하는 것이 있었다. 이는「불교를 우선시한 설교 냄새나는 만화」라고 불리게 되는 주원인이었으며, 글과 그림의 대립에서 글을 이기게 만드는 결과를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이로 인해서 스토리가 갑자기 단절되고, 독자의 입장에서는 텐션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으며, 불교교의를 올바르게 전달하려는 작가의 사고를 느끼게해, 복잡한 기분이 되게 만들었다.
확실히, 불교개념을 설명해주지 않으면, 불교교리를 잘 모르는 사람의 경우, 주인공의 행동에 대한 의미가 불명확해지니, 어쩔 수 없는 일이였겠지만, 좀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하면서 고뇌하던 중에 나온 방법중의 하나가, 2000년대 들어서의 승려를 포함한 "현대인의 고뇌" 라는 주제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많은 작품들이 아닌가 싶다. 이는 포교자인 우리 승려들에게 있어서도 많은 점을 시사해주는 것으로, 불교 이야기를 하면서도 불교용어를 나열하지 않고도, 설법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해준다.
마치면서
이처럼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분류1보다는 분류3이 증가경향을 나타내고 있으며, 현대 젊은 승려들을 소재로한 작품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는 단순히 불교 붐을 타고 일어난 것인지, 아니면 그만큼 고뇌하고 있는 독자들의 존재를 반영한 것인지는 단정적으로 뭐라 말할 수 없다.
이번에 내가 정의하고 분류한 것은 내 주관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다른사람이 볼 때「틀렸다」라고 생각될만한 부분들도 있을거라고 생각되며, 마지막에 게재한 표도 모든 불교만화를 총망라했다고는 말하기 힘든 점은 나도 알고 있다. 또, 불교의 간판을 걸지 않았더라도, 불교사상을 반영한 작품들도 다수 있지만, 이는 이번에 언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디까지나 개론적인 불교만화의 전체상을 살펴보면서, 흐름을 파악해보자는게 목적이었기 때문에 각각의 만화에 대해서 깊이 파고 들어가지도 않았다. 이렇게 미처 다 하지 못한 점들은 앞으로의 숙제로 삼도록 하겠다.
이 글이, 불교만화에 대한 관심을 조금이라도 불러일으켜, 읽게 되는 계기가 된다면, 불교에 몸담고, 계몽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으로서는 더없는 기쁨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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